- 박계주(朴啓周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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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3 ~ 1966
- 소설가로 호는 서운. 만주 간도 출생. 만주 용정의 중학교 시절부터 시,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38년에 장편 소설<순애보>가 <매일신보>현상 모집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. 그는 주로 낭만주의의 색채가 짙은 대중 소설을 즐겨 발표하여서 큰 인기를 끌었다.
[대표작] <구원의 정화> <대지의 성좌> <인간 제물> <화성녀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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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규수(朴珪壽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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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07 ~ 1876
-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호는 환재. 서울 출생. 박지원의 손자인 그는 1866년(고종 3)에 미국의 상선 셔먼 호가 대동강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자 평안도 관찰사로서 군대를 동원, 그 배를 불태웠다. 그리고 1875년의 운양호 사건 이후에는 우의정으로서 문호의 개방을 강력히 내세워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하였다. 그는 그 당시의 조선인으로서는 국제 사정에 가장 밝은 인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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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두진(朴斗鎭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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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6 ~ 1998
- 시인으로 호는 혜산. 경기도 안성 출생. 1939년에 시<낙엽송>등이 <문장>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그는 1946년에 박목월, 조지훈과 더불어 시집 <청록집>을 펴냄으로써 이들을 ‘청록파’로 일컫는다. 그의 시의 특징은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정신적인 경험을 세계 속으로 끌어들인 데 있다.
[저서] 시집<해> <오도> <사도 행전> <수석열전> <고산식물> 수필집<시인의 고향> <언덕에 이는 바람> 시론집<시와 사랑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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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목월(朴木月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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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5~1978
- 시인으로 본래 이름은 영종. 경북 경주 출생. 조지훈, 박두진과 더불어 시집 <청록집>을 펴냄으로써 ‘청록파’로 불리는 그는 처음에 동시, 동요를 썼으나 1939년에 <산그늘>등의 시를<문장>에 발표하면서부터는 민요성, 향토성이 짙은 서정시를 써서 그 특유의 한국 전통적인 시풍을 이루었다.
[저서] 시집<산도화> <난, 기타> <청담> <경상도 가랑잎> 수필집<밤에 쓴 인생론> 동서집<산새알 물새알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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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세당(朴世堂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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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29~1703
-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호는 서계. 서구적인 실학파 학자인 그는 1703년에 관중추부사로서 기로소에 들어가 주자학을 날카롭게 비판한 <사변록>을 지음 으로써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 (‘사문낙적’)으로 몰려 벼슬을 빼앗기고 귀양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. 한편, 서예에도 능하였다.
[저서] <색경> <산림경제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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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연(朴堧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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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78~1458
- 조선 세종 때의 문신, 음악가로 호는 난계. 고구려의 왕산악,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‘우리나라 3대 악성’으로 꼽히는 그는 악학별좌로서 음악책을 펴 내는 한편, 1427년(세종9)에 편경(아악기의 하나) 12장을 만들어 12율관에 의한 정확한 음률로 연주토록 하였다. 또 궁중 의식 때 향악 대신 아악을 사용케 하는 등 궁정 음악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. 그는 가야금, 비파에 능했으며 특히 피리를 잘 불기로 이름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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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용철(朴龍喆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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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4~1938
- 시인으로 호는 용아. 전남 광산 출생. 연희 전문 학교를 자퇴하고 1930년에 김영랑과 더불어 동인지 <시문학>을 창간,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. 그 후에도 <문예 월간> 등을 펴내는 한편, 많은 외국작품을 소개했다. 그는 회의, 모색, 상징이 주된 섬세한 감각의 시를 쓰며 순수 문학 운동을 전개하였다.
[대표작] <떠나가는 배> <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> <비 내리는 밤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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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은식(朴殷植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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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59~1925
- 학자, 독립 운동가로 호는 백암. 황해도 황주 출생. 일찍이 <대한매일신보> 등의 주필로서 민족 사상을 북돋우는데 힘쓰고 3.1운동 때는 시베리아로 망명하여 항일 운동을 하다가 상하이에서 <독립신문> 등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일깨웠다.
1925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 총리를 거쳐 대통령을 지내었다.
[저서] <한국 통사> <한국 독립 운동지혈사> <동명왕 실기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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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인로(朴仁老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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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31~1642
- 조선 선조 때의 시인, 문인으로 호는 노계. 1599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수문장, 선전관 등을 지내었다. 그는 송강 정철의 뒤를 이어 가사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.
[대표작] <태평사>
[저서] <노계집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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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제가(朴齊家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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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50 ~ 1805
-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호는 초정. 서울출생. ‘우리 나라 시문 4대가’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일찍이 박지원으로부터 실학을 배우고 1778(정조2) 에 우리 나라 정치, 사회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는 <북학의>를 썼다. 그 후 이덕무, 유득공, 서이수와 더불어 4검서관으로서 이름을 떨치었다. 한편 시문, 글씨, 그림에도 두루 능하였다.
[저서] <정유시고> <명농초고> <유정집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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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종홍(朴鍾鴻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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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3~1976
- 철학자로 평양 출생.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, 학술원 회원 등을 지내며 철학 사상에 관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. 특히 그의 논문 <조선 미술의 사적 고찰>은 유명하다.
[저서] <일반 논리학> <지성의 방향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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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종화(朴鍾和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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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1~1981
- 시인, 소설가로 호는 월탄. 서울 출생. 1921년에 시 동인지 <장미촌>에 시 <오뇌의 청춘>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. 그 후 1936년에 장편 소설 <금삼의 피>를 <매일신보>에 연재하면서부터 특히 역사 소설을 주로 써서 큰 인기를 끌며 문단의 지도자로서 큰 활약을 했다.
[대표작] 시<밀실로 돌아가라> <사의 예찬> 소설<대춘부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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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지원(朴趾源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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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37~1805
- 조선 후기의 실학자, 소설가로 호는 연암. 서울 출생. 일찍이 중국(청나라) 베이징을 왕래하며 견문을 넓힌 그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학문 탐구를 주장하여 실학자로서 지위를 굳히고 1780(정조 4)에는 베이징에 다녀와서 유명한 기행문 <열하일기>를 펴내었다. 한편 독특한 해학과 사실적인 문체로써 한문 소설에 발표, 조선 시대 한문 문학의 대표자로 꼽힌다.
[대표작] 소설<허생 전> <양반전>
[저서] <과농소초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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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박화성(朴花城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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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3~1988
- 여류 소설가로 호는 소영. 전남 목포 출생. 1925년에 <추석 전야>를 <조선문단>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으나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, 1931년에 장편 소설 <벽화>를 <동아일보>에 연재하면서 다시 문단에 나섰다. 이 후 작품을 계속 발표하는 한편, 여류 문인 협회 회장, 예술원 회원 등을 지내었다.
[대표작] <고개를 넘으면> <타오르는 밤> <벼랑에 피는 꽃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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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방정환(方定煥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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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9~1931
- 동 문학가, 사회 사업가로 호는 소파. 서울 출생. 일본 도쿄 대학 시절에 아동 문학 및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그 선구자로서의 길을 걸었다.
1923년에 잡지 <어린이>를 창간하고 이어 윤극영, 마해송, 윤석중 등과 더불어 아동 문학 단체인 ‘색동회’를 조직하였으며, ‘어린이날’을 정하였다. 그의 ‘어린이 사랑’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‘소파상’이 제정되었다.
[대표작] <동생을 찾아서> <7.7단의 비밀> <까치옷>
[저서] 동화집<사랑의 선물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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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백철(白鐵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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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8~1985
- 문학 평론가로 본래 이름은 세철. 평북 의주 출생. 일본 도쿄 고등 사범 학교 졸업 후 귀국, 이 후에는 동국 대학교, 서울 대학교 문리대, 중앙 대학교 등의 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문학 평론 활동을 하였다. 그는 우리 나라에 최초로 미국의 분석 비평을 도입하였으며 서양 문학의 소개 및 문학의 세계성 과 민족성 등을 다룬 많은 평론을 발표하였다.
[저서] <국문학 전사> <신문학 사조사> <문학 개론> <진리와 현실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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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변영로(卞榮魯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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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7~1961
- 시인, 수필가로 호는 수주. 서울 출생. 3.1 운동 때 ‘독립 선언서’를 영어로 번역, 외국으로 보낸 일이 있는 그는 1922년 이후 <개벽>지를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외국 작품을 번역하여 발표하였다. 1924년에 펴낸 그의 첫 시집 <조선의 마음>에는 격조 높은 시 정신과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이 깔려 있다.
[대표작] 시<봄비> <논개>
[저서] 시집<수주 시문선> 수필집<명정 40년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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